요즘 가장 핫한 브랜드를 꼽으라면 조금은 꺾이긴 했지만 발렌시아가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 핫한 신발 중 하나인 스테로이드 더비, 스테로이드 부츠 등을 내놓으며 아직도 건재함을 과시했는데요.
어글리 슈즈의 유행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발렌시아가의 트리플S, 트랙 슈즈 등과 삭스 스니커즈의 유행을 만든 발렌시아가 스피드 러너 등이 가장 대표적인 발렌시아가의 신발들입니다.
현재도 유행을 선도하고 있는 핫하 브랜드 발렌시아가.
오늘은 발렌시아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발렌시아가라는 브랜드의 개요
발렌시아가는 1917년 스페인 산 세바스티안에 발렌시아가의 창립자인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가 첫번째 부티크를 오픈하면서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1917년 스페인에 첫 부티크를 오픈한 발렌시아가는 스페인 내전으로 인해 1937년 8월 프랑스 파리로 근거지를 이전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발렌시아가는 1937년에 설립되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1937년 프랑스 파리에서 첫 컬렉션을 개최한 발렌시아가는 까다로운 최상류층 베스트 드레서 고객들에게 우아함과 기품을 갖춘 완벽한 품질의 의상을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발렌시아가의 시작,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는 1895년 스페인의 한 어촌에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옷을 만들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옷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의류 제작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던 발렌시아가는 13세가 되던 해 마드리드에서 카사 토레스 후작 별장에 놀러간 후 후작 부인이 입은 드레스를 빌려가 며칠 후 똑같이 만든 드레스를 내보입니다.
카사 토레스 후작 부인은 프랑스 장읜의 오뜨 꾸뛰르 옷보다 더 꼼꼼한 발렌시아가의 바느질 솜씨에 감탄하여 산 세바스찬에 있는 부띠끄에 추천하게 됩니다. 이후 부띠끄에서 일을 하며 뛰어난 바느질 솜씨와 완벽한 성격으로 유명해지게 됩니다.
1937년 8월 자신의 이름을 딴 '발렌시아가' 부띠끄를 오픈 한 후 17세기 화가 벨라스케스에게 영감을 받은 첫 파리 컬렉션으로 하루 만에 유명인사가 됩니다.
그리고 이후 프랑스 패션에 공헌한 것이 인정되어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며 오뜨 꾸뛰르보다 포레타 포르테(기성복)가 패션의 중심에 서게 되었고 꾸뛰리에로서의 자존섬을 지닌 발렌시아가는 은퇴를 선언한 후 4년 뒤인 1972년 사망하게 됩니다.
발렌시아가의 쇠락과 부활
완벽한 실력을 가지고 있던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가 사망한 이후 발렌시아가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샤넬, 크리스찬 디올 등 동시대에 활약하는 디자이너들보다 앞서간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일반인들 사이에서의 명성이 샤넬보다 디올보다 떨어지는 이유도 그것입니다.
코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사망 이후 쇠락의 길을 걷던 발렌시아가를 단숨에 살려놓은 디자이너가 바로 니콜라 제스키에르입니다.
1996년 26세의 나이로 발렌시아가를 맡아 다시 부활시킨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장 폴 고티에 이후 스타 디자이너를 배출하지 못하고 미국, 영국 등에 밀려났던 프랑스 패션계의 새로운 스타 디자이너였습니다.
일명 '모터백'으로 불리는 가방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었고 할리우드 스타들과 친분이 많았다고 합니다.
발렌시아가를 살려낸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2013년 발렌시아가를 떠나 LVMH 산하인 루이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됩니다.
여담으로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니콜라스 게스키에르라고 불렸지만 루이비통으로 이적한 후에 니콜라 제스키에르라고 정정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천재 디자이너, 알렉산더 왕
제스키에르가 이적한 후에 후임으로는 영국인 패션 디자이너가 유력하게 거론되었지만 알렉산더 왕이라는 디자이너가 들어왔습니다.
이름에서 보이듯 대만계 미국인이며 젊은 나이에 성공가도를 걸어온 디자이너입니다.
뉴욕 패션위크의 신성이나 다름 없던 스타 디자이너였습니다.
하지만 2016년 S/S 컬렉션을 마지막으로 2015년 7월 29일 발렌시아가 디자이너를 그만두게 됩니다.
첫 데뷔 컬렉션과 마지막 컬렉션은 호평을 받았지만 조금은 발렌시아가라는 느낌을 받지 못하는 재미 없는 상업적 디자인을 찍어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발렌시아가의 또 다른 전성기, 뎀나 바잘리아의 부임
2015년 11월 알렉산더 왕의 뒤를 이을 후임으로 베트멍의 뎀나 바질리아가 발표됩니다.
마틴 마르지엘라와 루이비통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으며 마르지엘라의 뒤를 잇는 해체주의로 유명했습니다.
소매가 바닥에 끌릴 정도로 엄청나게 긴 룩을 유행시켰습니다.
2017년 뎀나 바잘리아가 보여줬던 벨기에식 해체주의와 패션 트렌드를 강타하고 있는 스포티한 이미지를 결합하여 발렌시아가의 아이덴티티를 완전히 탈바꿈 시켰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2017년 S/S 시즌에 선보인 양말 같은 형태의 운동화 스피드 트레이너(스피드러너)를 성공시키고 그 열기가 식기도 전에 2017년 F/W 시즌에 어글리 슈즈 유행의 시초라고 불리는 트리플 S를 선보입니다.
뎀나 바잘리아는 발렌시아가의 많은 아이템을 중국 생산으로 돌렸다는 비난을 받기는 하지만 확실히 트렌드를 읽고 앞서나가는 능력은 뛰어났던 것 같습니다.
이후 2018년 F/W 시즌에는 트리플 에스와 마찬가지로 청키한 실루엣을 가진 트랙 슈즈를 발매하게 됩니다.
트랙슈즈는 꽤나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지만 트리플 에스 만큼의 폭발적인 반응을 받지는 못하게 됩니다.
이후 뎀나 바잘리아 체제의 발렌시아가는 포레타 포르테가 아닌 오뜨 꾸튀뜨로 돌아가겠다고 2020 S/S 쇼에서 발표합니다.
56년만의 오뜨꾸뛰르로의 귀환이었습니다.
이외에도 2022년 11월 소아성애적 화보 촬영으로 위기를 맞게 됩니다.
많은 구설수에 오르며 유럽 등에서는 발렌시아가에 대한 평판이 떨어지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글을 마치며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라는 천재적인 디자이너가 일으킨 브랜드와 그 뒤에 이어진 쇠락과 부활.
그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누가 뭐래도 발렌시아가는 최근 가장 핫한 브랜드 중 하나입니다.
최근 스테로이드 더비, 스테로이드 부츠 등의 새로운 신발이 핫해질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저도 발렌시아가라는 브랜드를 좋아하는 팬으로서 앞으로도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유행을 만들고 주도해왔던 발렌시아가, 앞으로도 멋진 디자인을 많이 선보여주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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