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하면 많은 것들이 떠오릅니다. 인간 구찌라고 불리는 연예인들부터 구찌 갱이라는 힙합 트랙까지.
오늘은 이탈리아의 구찌오 구찌가 설립한 구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구찌의 시작, 구찌오 구찌
구찌는 이탈리아의 패션 디자이너인 구찌오 구찌가 피렌체에서 설립한 브랜드입니다. 1897년 런던의 사보이 호텔에서 일하던 구찌오 구찌는 사보이 호텔에 찾아오던 상류층 손님들의 고급스러운 가방들에서 영감을 얻고 1902년 고향이었던 피렌체로 돌아가 가죽 공방 기술을 배웠습니다. 이후 1921년 피렌체에 자신의 이름을 딴 가죽 용품 및 작은 가방을 취급하는 구찌의 첫번째 매장을 오픈합니다. 1903년대에는 상품라인을 더욱 확장하고 다양화 시키며 1938년에는 로마 콘도티 거리에 매장을 열었습니다.
구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가 패전하면서 자재 공급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구찌오 구찌의 첫째 아들인 알도 구찌가 일본에서 수입이 가능한 대나무로 제품을 만드는 아이디어를 내게 됩니다. 이를 통해 만들어진 제품이 구찌를 상징하는 제품 중 하나인 뱀부백입니다.
1951년에는 말 안장에서 영감을 얻은 그린, 레드, 그린 조합으로 이루어진 삼선 마크인 "더 웹"을 개발했습니다. 이 로고는 지금까지 구찌의 트레이드 마크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1953년 창업주였던 구찌오 구찌가 사망하고 셋째 아들인 알도 구찌와 넷째 아들인 로돌프 구찌가 경웡권을 나눠 가지게 됩니다. 구찌오 구찌의 아들인 알도 구찌는 창업주의 이름에서 영감을 얻은 GG로고를 개발하여 현재까지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후 매장을 늘리며 1970년대에는 도쿄와 홍콩에도 매장을 오픈하는 등 아시아 진출도 본격화 하게 됩니다.
구찌의 위기, 구찌의 침체기
1982년 구찌 가문의 경영진들의 논의 끝에 로돌포 구찌가 디자인부터 생산, 공급까지 모든 단계에 관여하는 경영권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1년 뒤인 1983년 로돌포가 사망하고 로돌포 구찌의 아들인 마우리치오 구찌가 경영권을 물려받으며 구찌는 쇠락하게 됩니다. 이에 관련해 회장이 동의하지 않았는데 알도 구찌의 아들인 파울로 구찌가 '파울로 구찌'라는 이름으로 저렴한 제품을 판매하는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기까지 합니다. 이는 구찌의 브랜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히게 됩니다.
하지만 이후 1987년 한 투자회사가 구찌의 지분을 인수하기 시작해 90년대 초반 구찌의 전체 지분을 인수하게 됩니다. 1994년 가족 경영의 형태를 탈피한 구찌는 톰 포드가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됩니다.
톰 포드는 구찌의 전통적인 유산이었던 구찌의 더웹, GG로고 등과 홀스빗 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큰 성공을 합니다. 새롭게 탈바꿈한 구찌는 대중에게 어필하며 1998년 유럽언론협회의 올해의 유럽 기업에 선정되었습니다. 톰 포드 이후로 디자인만 하던 수석 디자이너 개념에서 회사 이미지 전체를 맡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직위가 유행합니다.
하지만 1995년 마우리치오 구찌가 전처였던 파트리시아 레지아니의 사주를 받은 암살자의 권총에 의해 사망하게 됩니다. 이후 1999년 PPR그룹 (현재의 케링 그룹)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단일 브랜드 회사에서 복수 브랜드 그룹으로 전환됩니다.
2004년에는 톰포드의 재계약 과정에서 의견이 좁혀지지 않으며 톰포드는 구찌를 떠나고 프리다 지아니니가 그 자리를 대체하게 됩니다. 프리다 역시 구찌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2007년 닐슨의 세계에서 가장 갖고 싶은 명품 브랜드에 선정됩니다. 이후 새로운 CEO 파트리치오 디마르코가 임명된 후 매출이 감소하며 뒤쳐지는 브랜드가 됩니다. 이로 인해 2014년 구찌를 이끌던 프리다 지아니니와 파트리치오 디마르코와의 계약이 종료됩니다.
구찌의 부활, 알레산드로 미켈레
구찌는 2015년 새로운 수장으로 마르코 비자리와 알레산드로 미켈레를 영입합니다. 마르코 비자리는 스텔라 맥카트니와 보테가 베네타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인물이었지만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무명이었던 디자이너였습니다. 이로 인해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구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임명은 파격적이었다는 평가를 듣습니다.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구찌는 첫번째 컬렉션 이후로 업계를 사로잡습니다. 올드하고 식상하단 평가를 받던 이미지를 바꿔 화려하고 자유분방한 이미지를 구축합니다. 브랜드 전반의 이미지를 바꾸며 스트릿 패션, 힙합 패션 등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됩니다. 젊은층의 입소문에 힘입어 2015년 매출은 전년대비 15%, 2016년에는 17% 급등하게 됩니다. 2019년 수익의 60%가 30세 이하 고객층에서 나왔다는 통계를 보면 젊은 층에게 가장 핫한 브랜드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전에는 주로 여성들이 찾는 브랜드였다면 지갑, 상의, 바지 등의 힙한 스타일의 디자인이 시즌별로 나오며 남성층을 많이 유입했습니다. 2017년에는 에르메스, 2018년에는 샤네의 매출을 제치고 업계 2위의 명품 브랜드에 올랐습니다. 또한 영국의 브랜드 파이낸스에서 선정한 2020년 럭셔리 브랜드 가치 순위에서 2위를 차지합니다.
2010년대 중후반 이후 많은 럭셔리 브랜드들이 로고를 변경했는데 2020년 11월 구찌도 100주년을 두 달 남기고 기존의 로고만 지킨 채 기존의 흰색 패키징을 그린컬러로 변경합니다. 2021년에는 100주년을 맞아 발렌시아가와 서로의 디자인을 도용하는 방식의 작업인 "해커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이 외에도 롤러장을 연상시키는 미러볼 느낌의 인테리어를 구찌 가옥이나 해커 프로젝트 팝업 스토어 등에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70년대 무드를 다시 선보였습니다.
구찌의 이야기를 마치며
스니커즈 매니아인 저도 구찌의 컬렉션을 보며 어글리 슈즈의 대표격인 롸이톤 슈즈나 구찌의 에이스 스니커즈는 탐났던 제품이었습니다.
회장의 전처에 의한 피살 등 많은 이야기가 있는 구찌였는데요. 앞으로 이런 구찌가 더 흥행하는 브랜드가 될지는 한 번 지켜봐야하겠습니다.
이상으로 구찌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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